드디어 말로만 듣던 <설국열차>를 봤습니다. 평가는 엇갈리는 분위기입니다만 저는 시종일관 크게 감탄하면서 봤습니다. 한국인 감독이 이 정도의 퀄리티를 가진 작품을 만들었다는 게 놀랍다는 생각으로..

영화의 배경은 다음과 같습니다. 2014년 인류는 온난화 방지를 위해 CW-7이라는 기후 조절물질을 살포합니다. 하지만 부작용으로 빙하기가 도래하죠. 거의 모든 생명체는 죽고, 지구는 유령위성으로 전락합니다. 이에 마지막 생존자들은 미래판 '노아의방주'처럼 거대한 열차를 만들고 여기서 후일을 기약합니다. 

이곳은 하나의 소세계(小世界)로서 세상 모든 것이 축약돼 있습니다. 윌포드라는 지배자 아래 다양한 계급 및 역할을 가진 사람들과 칸별로 수족관, 미용실, 학교, 정원, 심지어 클럽까지 존재하죠. 이를 움직이는 원동력은 윌포드가 만든 기차엔진(하드웨어)과 지배 이데올로기(소프트웨어)입니다. 

영화는 최하류층에 있던 사람들이 주인공 '커티스'를 중심으로 체제 변화를 꿈꾸며 봉기하는 데서 시작합니다. 이들은 너무도 강고해보이는 체제의 변화를 꿈꾸며 도전하고자 합니다. 하지만 이 과정은 결코 간단하지 않습니다. 먼저 지배층은 물리적으로 강고한 힘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현실은 결코 간단하지 않고 복잡한 요소로 촘촘히 짜여져 있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반란의 명분부터 살펴보겠습니다. 도전하는 계층이 윤리적인가? 그렇지 않습니다. 서로를 잡아먹는(정말로 생살을) 아비규환속에서 살았던 사람이며, 이들이 대안을 만든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보입니다. 그렇다고 지배층이 비윤리적인가? 모든 것이 제한된 기차안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불평등과 개체조절을 통해 '균형상태'가 필요하다는 월포드의 지배 이데올로기는 나름 일리가 있어보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커티스는 나중에 엄청난 혼란에 빠집니다. 단순히 최악의 조건에서 살기 싫어 뛰쳐나온 것인데 기차라는 체제는 쉽게 판단하기 어려운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영화는 "아무리 어려워도 구체제의 파괴없이는 진보가 이뤄질 수 없다"는 것을 말하고자 합니다. 

커티스가 생각을 정리한 것은 5살 이하 아이들이 엔진의 부품으로서 일하는 것을 보고 나서입니다. 기차가 영원히 지속될 수 없다는 것(폐쇄된 공간에서 어차피 엔진은 고장나기 때문에), 명분이 있어 보이는 지배층의 논리가 결국 허구라는 것(극도의 비인간성을 기반으로 움직이기 때문에)을 꿰뚫어 본 것입니다. 즉 구체제가 결코 지속될 수 없다는 판단을 한 것이죠. 

개인적으로는 영화 <메트릭스>와 굉장히 유사하다고 봤습니다. 월포드=아키텍트, 길리엄=오라클, 총리 및 관리병력=스미스, 커티스=네오, 남궁민수=키맨, 뒷칸탑승자=시온, 기차=메트릭스를 떠올렸다면 과한 생각일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국열차가 메트릭스와 다른 가치를 주는 점은 기차라는 폐쇄적 공간으로 무대로 삼음으로써 훨씬 단순하고, 현실적인 메시지를 줬다는 점입니다. 

아울러 종합적으로 봤을 때 크게 흠잡을 게 없을 정도로 훌륭한 연출력을 보여줬다고 봅니다. 다만 후진적 민족주의 행태로 오해받을 수 있는 송강호의 한국어 드립과 깊이 있는 주제를 소화하기에 배우들의 연기력이 2% 부족하다는 게 조금 아쉽게 느껴지는 대목입니다. 

개인적으로 봉준호 감독이 커티스와 오버랩이 됐습니다. 문화장벽이 큰 영화라는 콘텐츠 장르에서 이처럼수존 높은 작품을 뽑아냈다는것. 아울러 본인 또한 <살인의추억>과 <괴물>을 통해 충분한 자질을 보여줬지만 한편으로는 <인류멸망보고서>를 통해 현시창(꿈은 높지만 현실은 시궁창)을 경험한 사람으로서 상당 규모의 투자와 지원을 받아 좋은 결과물을 냈다는 것. 이점이 구체제에 대한 봉 감독의 성공적인 저항이 아니었나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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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식 2013.08.14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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